여름밤이었다. 대성형과 나는 부쩍 가까워져 있었다. 거실의 소파에 나란히 앉아 창 밖으로 난 짙은 어둠의 밤을 보았다. 형이 좋아하는 재즈를 틀고. 질이 좋은 와인을 마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일 얘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 얘기도 하고, 사람 얘기도 하고. 마치 햇병아리 어릴 적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물론 그때는 편의점에서 사온 음료수를 마시고 나의 일방적인투덜거림과 그것을 난감해하지만 티는 안내려는 형의 달램이었지만. 

 대성형은 나이가 들어갈 수록, 조금 부끄러운 말이지만, 예뻐졌다. 사실 내가 형을 보아왔을 때 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것을 인정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인정하고 났을 때에야 보드라운 짙은 피부, 동그란 웃음, 두툼한 분홍빛 입술이 눈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나는 그런 대성형을 나 혼자서 담아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소소하지만 짧더라도 좋은 시간과 날들이었다. 형은 어디로 튈 지 모르고 불안정했던 내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안정을 찾고 내 할 일을 찾아하는 모습을 좋게 여기고 기특하게 여겼다. 

 형은 여름의 더위와 밤에 부는 한 줌의 바람에 나른함을 느끼는지 앉은 소파에 살짝 흐트러졌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작은 눈으로 나를 보지만 올곧았다. 형의 카키빛이 도는 앞머리를 손에 담아 만져주고 싶지만 형이 겁을 먹고 두려워할까봐 마음에만 담아뒀다.

“너, 되게 할 말이 있어보여.”

 작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어왔다. 제가요? 내가 그런가? 하고 머쓱하게 반응해보았지만 형은 그래도 ‘뭔데~’하고 재촉했다. 

“별 거 없는데.”

“별 거 아니어 보이는데?”

 눈가를 찡긋거리며 장난스레 되묻는데 그런 끼부림에도저히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나, 형이...

“형은 무인도에 가게 되면 누구랑 갈거예요?”

 나도 왜 이런 질문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왜 하필 무인도였을까? 무인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지만 이질문의 전제는 오직 두 명이어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은 누구냐는 것이니까. 나로선 최선이었던 셈이다. 형은 그게 그렇게 묻고 싶었어? 하고 눈을 댕그랗게 뜨다가 내가 나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곧 곰곰이 생각을 하는 듯 했다. 형은 왜 이런 작은 것 하나하나 성의를 놓지 못하는걸까.

“난, 너랑 있을래.”

“...에?”

  기대는 했었지만 포기했던 대답이 들려 놀랐다. 나라니. 형의 옆모습을 보았다. 형은 나를 보지 않고 창 밖만 응시했다.

“왜요?”

“왜냐면 형들이랑 가면 내가 막내잖아.”

“그럴 줄 알았어.”

 내가 투덜거리자 형은 ‘농담이야...’하고 웃더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무게를 싣지 않고 살짝. 내 어깨에 기분 좋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정도로.

“너는 어디에 데려놔도 잘 살 것 같아. 형들은... 음, 비밀이야. 같이 있음 내가 너무 힘들 것 같아.”

 형과 나는 하하 웃었다. 그 점은 우리 둘 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였다.

“제가 형을 위해서 살 곳을 마련하고 탈출할 방법을 찾을 때 형은 저를 위해서 해주실 거 없어요?”

“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줘?”

 ‘그런 것 까지 바라지 않았는데...’ 형은 또 웃었다. 형은 참 웃음이 많다. 그 웃음은 무뚝뚝한 나의 경계심을혼동시키고 결국 나는 형을 위해 안락한 장소를 마련해주고 싶고 형을 외롭고 힘든 곳으로부터 탈출 시켜주고 싶다.

“제가 누군데요. 저는 목숨에 환장하는 사람인데요.”

“그럼 나는...”

 형은 잠깐 뜸을 들였다. 

“나는 너를 위해서 나무에 올라 코코넛을 따줄래. 그건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형을 내려다 보았다. 형은 여전히 앞을 보았다.

 “그리고 낮동안은 너가 힘들테니까 밤에는 내가 너의 잠자리를 돌봐주고... 승현아,힘들었지? 수고했어. 이런 말도 해주고. 무인도니까 별도 잘 보이겠지. 같이 별도 보고.”

 왜 이렇게 울음이 났을 뻔 했을까? 형이 따뜻한 목소리로 내 말도 안되는 질문에 온화하게 답을 해주는 것 자체가 소중했어서였을까. 

“...형.”

 낮은 목소리로 형을 부르니 바로 고개를 위로 올려다보앗다. 작은 눈에 짙고 맑은 고동색 동공이 나를 뚜렷이 쳐다보았다. 주체할 수 없이 끓는 마음을 안고 살짝입술을 벌려 가까이 다가가니 형이 그런 나를 잠시 보다가 눈을 감는다. 난생 처음으로 형의 입술의 감촉을 느꼈다. 푹신하고 촉촉하고, 뜨거운 숨에 와인향이 섞여있다. 형의 혀는 이렇게나 젖어있고 말랑하구나. 형의 이는 이렇게나 촘촘하고 강인하구나.

 살짝 실눈을 떴을 때 눈꺼풀에 총총히 박힌 속눈썹들이 먼저 눈에 담겼다. 형도 곧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어때.”

“...어, 어...”

“바보야, 내가 너를 위해 해주겠다는 그것들 어떻냐고.”

“좋아요.”

“그치,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후후, 만족스럽게 웃는 대성형의 웃음이 예뻤다.

“좋아요.”

“응.”

“좋아해요.”

“나도.”

 다시 창 밖을 보았다. 내 어깨에 기댄 형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길들이기 어려웠던 고양이를 마침내 길들이기에 성공해 조심스레 접근하듯이 말이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는데 너무나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를 온 몸에 퍼지게 할 수 있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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