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나는 숲에 있었다. 아무도 옆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앞을 향해 걸었다. 알고보니 내가 있는 이 장소가 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르막이 계속 이어지고 숨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묵묵히 걸었다. 정상에 도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푸르른 나무들과 우거진 풀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길 위는 나 혼자였다. ...길? 누군가가 이 산을 오르기 위해 길을 텄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수월하게 산을 올랐다.

 잠깐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추어 나도 모르게 손에 쥐어져 있던 물병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핸드폰이나 시계가 없어 시간이 분간이 되지 않았다. 공기는 매우 눅눅했다. 심지어 점점 뜨거워지기까지 했다. 지금은 낮인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공기 중에 잔뜩 데워진 뜨겁고 미세한 물방울들이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다. 입을 살짝 벌려 그 맛을 보았다. 달았다. 아까 마셨던 물보다 더. 다시 기운을 내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국의 날씨가 맞는 것일까? 어쩌면 한국이 아닐지도 몰랐다. 나는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기 위한 욕심이 가득했다. 몇 시간을 걸은 것일까. 정신없이 걷다보니 하늘이 보였다. 내가 생전 본 적이 없는 하늘이었다. 빨갛게 깔린 노을과 덮쳐오는 밤하늘이 이리 저리 섞여있었다. 선명하게 빛나는 달과 총총한 별이 떠 있었다. 그 하늘을 더 가까이, 더 길게 보고 싶어서 걸음을 빨리했다. 

"헉, 헉."

 더 이상 숨이 찰 수 없을 것 같이 숨이 찼다. 폐가 오르락 내리락하는 주기가 빨랐지만 아픈 것 까지는 아니었다. 머리는 수분이 가득 찬 공기에 의해 다 젖었고 입고 있는 등산복도 눅눅해졌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런 것들을 잊게 하는 광경이 펼쳐질 것을 생각했다. 정상에 도착했다. 여전히 사람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명 있었다. 사람이 맞는 것일까? 검은 인영이 아른아른하게 보여 순간 너무 힘들어서 환영을 본 것인 줄 알았다. 그 인영에게 겁도 없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럴 수록 수평에 깔린 노을빛이 인영을 선명하게 비추었고 나는 그것이 대성형임을 알게되었다.

"승현아!"

"형!"

 형은 푹 젖어있는 나와 달리 보송보송한 상태였다. 옷도 등산복이 아니라 맨투맨 티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일상복 차림이었다. 형은 나를 보고 살짝 얼굴을 찌뿌리더니 가지고 있던 손수건으로 더러워진 나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오느라 고생했어."

"뭘요."

 형의 손길이 좋아 그저 헤헤 웃었다. 형도 그런 내가 웃긴 듯 미소지어 보였다.

"여기 하늘이 끝내주네요."

"그러게... 너무 예뻐서 계속 보고 있었어."

"형, 내려갈거예요? 저랑 같이 더 보다 내려가면 안돼요?"

"나야 좋아."

 우리 둘의 옆에는 벤치가 있었다. 그 위에 나란히 앉았다. 하늘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타오를 듯한 붉음과 차분하기 그지 없는 어둠이 공존했다. 색들은 오묘하게 섞여 조용히 흘러갔다. 별들이 그 사이를 자르르 매끈한 자갈처럼 쏟아져내려갔다. 들이마쉬는 공기가 상쾌했다. 옆에 앉은 형의 기운은 따뜻했다. 나의 왼 편에 앉은 형을 보았다. 하늘의 빛을 받은 옆 얼굴이 앳되보였다.

"형, 예쁘다."

"...뭐가 예뻐."

 형은 쑥쓰럽다는 듯이 나를 보고 말했다. 형이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축축하다고 형이 말했다. 그제서야 나는 등산길이 공기는 축축하고 길은 험해서 힘들었다고 투덜거렸다. 

"...그래도 정상에 와서 좋아요."

"잘 왔어."

"하늘도 멋진데 형이 있어서 더 좋아요."

 나는 왜 이렇게 낯간지러운 말들을 하는걸까? 

"나도 너가 와서 좋아."

 형이 내 손을 만지작거렸다. 손가락이 좀 짧고 굵은데다가 굵은 털이 나있는 나의 손과 달리 형의 손은 솜털만 나서 부드럽고 손가락이 얇고 길었다. 좋은 촉감의 살덩이가 내 손을 어루 만지니 기분이 좋았다. 

"승현아."

 촉감에 정신을 팔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니 형의 두 눈이 코 앞에 있었다. 갑작스러워서 놀랐지만 고개를 빼진 않았다. 형이 먼저 눈을 감았고 나는 형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형의 두툼한 입술과 나의 얇은 입술. 두 입술끼리 비벼지는 느낌이 황홀했다. 

"...어때?"

 형이 먼저 살짝 입술을 떼고 물었다. 나는 형의 입술을 나의 손가락으로 한 번 훝어주고 형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마치 꿈 같아요."

"꿈...?"

"네, 꿈..."












 "헉."

 뒷골이 바짝 땡겨지는 느낌과 함께 굳게도 닫혀있던 눈을 떴다. 

"왜 그래. 꿈 꿨어?"

 라고 걱정스레 물어오는 소리가 옆에서 들리고 그제서야 내가 비로소 어디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은은한 주황빛의 조명만을 점등한 호텔 방 안이었고 나는 침대 위에 있었다. 그리고 등산복 차림이 아닌 나체였다. 다만 꿈...에서처럼 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혀, 형."

"악몽 꿨어?"

 왼쪽에 앉아있어야 할 형은 나와같이 모두 벗고 젖은 채 누워 있었다. 

"아, 아뇨. 악몽은 아닌데."

"너, 끝나자마자 잠들어버리더니 계속 헉헉대고 막 잠꼬대 했어."

"그래요...?"

"응."

 형이 부운 입술을 내밀고 삐죽였다. 오랜만에 만나 같이 섹스했다는 사실이 이제야 와닿았다. 

"아니, 꿈 속에서 제가 등산을 했어요."

"너 산 오르는거 완전 싫어하잖아."

"꿈이니깐요...?"

"길도 넘 험하고 날씨도 장난아니고 아무튼 진짜 힘겹게 올라갔는데 정상에 올라가니까 형이 있었어요. 형이랑 경치 구경도 하고 뽀뽀하다가 깼어요."

 형은 실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승현."

"네?"

"등산하는 꿈. 그거 섹스한다는 뜻이야."

"...?"

 형이 내 팔뚝을 찰싹 때렸다. 그리고 흥흥 웃으면서 내 팔에 얼굴을 기댔다.

"우리 승현이~ 형이랑 오랜만에 하니까 꿈같아쪄요~"

"아, 아니거든요!"

"너 표정 진짜 대박이었는데. 나 니 표정 보고 갔잖아..."

 으, 부끄러워. 괜히 형을 감싸 안아 같이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형이 맨다리를 내 허리에 두르고 내 젖은 앞머리를 정리해주었다. 

"귀여운 승현이."

 나는 형의 손목을 탁 잡고 슬쩍 노려보았다.

"만약 등산하는 꿈이 섹스하는 꿈이라면 형이 그 산인가?"

"...뭐 ... 그렇겠지?"

"그럼... 형 산에는 이미 길이 뚫려있던데 그건 뭔 뜻이에요?"

"알면서 묻냐."

 형이 다른 손으로 내 이마를 툭 쳤다. 칫, 하고 투덜거리다가 형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그래도 형이 저보고 꿈에서 뭐라 그랬는 줄 알아요?"

"뭐라고?"

 형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제가 정상에 와서 좋다고 했어요."

"으응..."

"그건 굳이 뜻 안 물어도 되죠?"

"그럼."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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