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은 불현듯 누드 크로키가 하고 싶었다. 탄탄하면서도 곡선이 있는. 다부지면서도 우아한 몸을 눈에 담고 종이에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용은 종종 그런 욕망이 있었다. 선하면서도 섹슈얼한 어떤 존재를 잠시만이라도 소유하는 것이다. 게으른 지용은 그저 누워서 머릿속으로 그렸다. 한 구석 한 구석 빠짐없이 더듬다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 존재를 다 잡아먹어버리는. 지용은 탐미주의자였고, 성적인 것을 좋아했다. 본인도 그걸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즐겼다. 그래서 지용은 자신이 다니는 미술 대학 내에서 알 수 없는 무심함과 극단의 퇴폐가 풀풀 드러나 다가갈 수 없는 선배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용은 항상 혼자였다. 

아무튼 지용은 누드 크로키를 해야만 한다는 욕망을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델은 찾기 힘들었다. 그런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전문 모델이든 지용의 학과에서든 그 어디에서든 그의 욕망을 채워줄 이는 없다고 단정지었다. 그래서 찾으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 지용은 틈만 나면 노트를 꺼내 머릿속의 존재를 스케치했는데 확실히 실물이 없으니 구현하기 어려웠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습관처럼 손톱을 입에 무는 일이 허다했다.


“어, 안녕하세요, 선배님.”


 그 때는 지용이 피곤함에 지쳐버려 멍한 얼굴로 강의실 복도를 걷고 있었을 때였다. 조근하지만 밝은 목소리가 문득 들려와 정신을 차리니 강대성이 있었다. 예전에 한 번 보던 미술 대학의 한 학년 후배다. 지용은 서양화를 전공하지만 대성은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다. 우연히 같은 교양의 같은 조가 된 적이 있어 안다. 대성은 귀여운 얼굴에 붙임성이 있어 사람에 대한 경계가 많은 편인 지용도 대성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팀플을 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가끔 보면 인사하는 정도.


“어… 안녕.”


“네, 잘 지내고 계세요? 되게 오랜만에 뵈는 것 같아서.”


 각종 마카며 도구들이 잔뜩 담긴 플라스틱 통을 안고 있는 대성은 여전히 귀여운 편이었다. 저 헤헤 하는 웃음이며. 확실히 경계심을 내려놓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나 지금 크로키가 하고 싶은데 고민이 많아.’라고 말하려던 지용은 대성의 말에 할 수 없었다.


“…어, 승현이 형! 아, 선배님 죄송해요, 먼저 가볼게요. 다음에 뵈요.”


“어어, 그래. “


 대성은 다시 꾸벅 인사하더니 지용 뒤로 투닥투닥 뛰어간다. 잠깐 뒤를 보니 대성이 최승현과 조잘조잘 대화하는 것이 보인다. 왜 하필 최승현인지. 지용과 같은 과 동기인 최승현과는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맞지 않는 상성과 크리틱 시간에 서로를 물어뜯으며 상대의 작품의도와 작품을 깎아내리느라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는 사이다. 승현은 지용을 흘긋보다가 다시 대성을 향해 웃어보이며 멍청한 반응들을 했다. 웃기는 군. 강대성 쟤가 그리 좋을까. 승현은 대성과 대화를 계속 하면서 대성의 어깨에 두르던 팔을 슬금 내려 허리로 가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미묘한 느낌으로 허리를 주물러댔다.

뭐야. 둘이 사귀냐. 지용은 아예 뒤돌아 팔짱을 끼고 그들을 관찰했다. 연보라색 니트에 청바지를 걸친 강대성의 뒷태는 꽤 볼만 했다. 어깨가 넓으면서도 동그랬고 허리는 얇은 편이었다. 청바지를 입은 다리의 핏도 괜찮았다. 헐렁한 니트의 소매에 반쯤 가려진 손도 귀여운 편이었다. 쟤는 어떨까. 괜찮을까. 지용은 대성이 문득 크로키의 모델이 되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상적이진 않을지라도 참고와 대체는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야, 너 뭐 볼 일 없냐?”


 시비조의 굵은 목소리에 지용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볼 일 없는데. 그냥 둘이 좋아보이네.”


 대성의 얼굴이 붉어지고 최승현은 멍청하게도 입 한 꼬리만 올려 웃어보인다. 너도 참 만만찮은 본능적인 새끼구나.라고 지용은 생각했다. 


“어…형, 나 이제 가볼게. 약속이 있거든.”


“내가 역까지 데려다줄까?”


 꼴갑떠네.


“아니이. 괜찮아. 형도 뭐 볼 일 없어? 나 먼저 갈게.”


 하고 싱긋 웃는 대성의 얼굴이 귀엽다고 지용은 생각했다.




 지용에겐 대성의 번호가 마침 있었다. 예전에 같이 했던 팀플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용은 잠깐 술을 마시다가 대성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강대성]


 다시 술을 한모금 마셨다. 대성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것은 처음이다. 지금 시간은 12시를 향해가는 밤.


[어 네! 안녕하세요~]


 2분 쯤 뒤에 바로 답장이 왔다. 문자 말투도 똑같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너 혹시 모델 좀 해줄 수 있냐]


 지용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무슨 모델이요?]


[내 모델]


 좀 낯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아 저야 괜찮은데… 제가 어떤걸 하면 되나요?]


 꽤 까다로운 녀석이군.


[내가 당장 그리고 싶은게 있는데 니가 잘해줄 것 같아서]


[아…]


 거절인가. 지용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저 기다려보기로 했다. 마시던 맥주는 어느덧 바닥을 보였다. 5분 쯤 뒤에 다시 대성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혹시 누드인가요?]


[어 맞아 싫으면 안해도 되고]


 대성도 지용의 이상적인 모델은 아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 당장 그리고 싶으시면 지금인거예요?]


[할거냐]


[어디로 가면 되나요?]


 지용은 대성이 알고보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적인 답장은 쏙쏙 피해가면서 지용의 제안을 수락한다. 아까 낮에도 그렇고 대성이 꽤 교묘한 면이 있었다. 지용은 자신의 집주소를 찍어보내니 지금 마침 그 근처를 지나는데 곧 가겠다고 답장이 왔다. 지는 왜 이 시간에 밖에 있는건지. 생긴 것은 지금쯤 깊은 꿈나라 갈 것 같은데 말이다.지용은 담배꽁초와 술병으로 어지러운 집을 좀 치우고 이젤을 세웠다. 지용이 키우는 고양이는 스크레쳐에 발톱을 박박 긁어댔다. 

30분 쯤 지났을까. 초인종이 울렸고 바로 문을 열어주니 대성이었다. 약간 피곤해보였지만 괜찮은 컨디션같았다. 


“진짜 왔네.”


“저 약속 잘 안 어겨요.” 


대성은 살풋 웃었다.


“들어와.”


“감사합니다.”


대성은 신발을 벗으며 ‘선배님 집이 되게 넓으시네요.’ 하고 감탄했다. 지용은 그저 ‘뭐 마시고 싶은거 있냐’라고 물었다. 


“뭐 있어요?”


“물도 있고 주스도 있고 콜라도 있고 술도 있고.”


“저 그럼 술이요.”


 대성은 소파에 풀썩 앉아 다리를 모으고는 그네처럼 흔들며 대답했다. 대성이 고양이를 발견하고 ‘어 고양이다. 귀여워.’ 하고 웃으니 평소 지용을 쌩까던 고양이가 웃기게도 대성에게 다가와 무릎으로 풀쩍 뛰어오른다. 부엌에서 유리잔에 보드카에 토닉, 그리고 레몬 주스를 섞어 따른 것 두 잔을 가져오던 지용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얘 되게 이상하네. 엄청 무뚝뚝한 놈인데.”


“제가 고양이 냄새를 좀 많이 묻혀오거든요. 맨날 길고양이 놀아주느라.”


“집고양이가 그런 것도 알아보나.”


 여유로운 대화들이 오고가는데 지용은 대성의 새로운 면을 알아가는 중이었다.


“그럴지도요.”


“자 마셔.”


“고맙습니다.”


 대성은 꾸벅하더니 눈을 감고 한모금 들이킨다. 고양이가 뒷발까지 세운 채 대성을 향해 냥냥거리기 시작했다.


“왜? 너도 마시고 싶어? 몸에 나빠.”


 대성은 고양이의 등을 살살 쓸어주었다. 그러다 세워둔 이젤을 본 것 같았다.


“다 마시고 하는거예요?”


“상관 없어. 그냥 너가 준비된대로.”


“그럼 다 마시고 해요.”


“넌 긴장도 안되냐. 다른 모델들은 긴장 안하는 척 하면서도 엄청 표정 굳어있는데.”


“많이 해봐서 그래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지용이 대성을 바라보니 대성은 홀짝거리며 꽤 잔을 비워가고 있었다. 지용의 눈에 피곤한 듯 살짝 내리깐 눈매라든지, 잔을 물고 있는 입술이라든지, 마실 때 젖혀지는 목이며 눈에 담긴다. 


“재미있네, 너.”


“제가요?”


“어.”


 대성은 진심으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대성을 두고 방으로 간 지용은 샤워가운을 가지고 돌아왔다. 


“방 가서 이걸로 갈아입고 와.”


“어차피 볼 거 아니예요?”


 웃으며 대답하는 대성과 그를 내려다보는 지용 사이에 어떤 무언가가 흘렀다. 


“너 말이 꽤 많구나.”


“아니예요. 알았어요.”


 대성은 고양이를 옳은 방법으로 안아 바닥에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지용은 미처 못 깎은 연필을 다듬었다. 사각사각, 조용한 거실엔 연필을 깎은 칼의 소리와 방 안에서 대성이 옷을 벗고 있을 소리만이 작게 울렸다. 지용은 작은 스툴을 가져와 소파의 정면에 있는 이젤 앞에 놓았다. 


“선배.”


 스툴에 구부정하게 앉아있는 지용이 대성의 부름에 바라보았다. 가운이 희어서 그런지 대성이 꽤 짙은 피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도 길었고 그 아래엔 가지런한 쇄골이 보였다.


“저기 앉아.”


“네”


 대성은 조용히 대답하고 소파에 앉아 지용을 마주봤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뒤로 누워서 고개만 돌려 나를 바라보면 돼.”


“….”


“불편하면 자세 바꿔도 돼.”


“괜찮아요.”


 대성은 미소 짓더니 가운의 끈을 살짝 풀었다. 지용은 덤덤한 척 대성의 행태를 바라본다. 가운의 폭이 벌어지며 힘없이 툭 소리를 내고 흘러내려 대성의 상체를 그대로 드러낸다. 대성의 가지런한 쇄골 아래엔 탄탄한 가슴팍, 그럼에도 보드라움이 느껴질 것 같은 큰 크기의 가슴이 있었다. 유두는 분홍빛으로 붉은 편이었고 유륜도 마찬가지였다. 동그란 배꼽 아래엔 체모가 조금 나있었다. 

대성은 아예 일어나 가운을 모두 벗어내렸다. 짙게 난 체모. 넓은 골반. 큰 크기의 남근. 쭉 뻗은 다리. 대성은 뒤를 돌았다. 척추에 곧게 그어져있는 근육의 선, 생각보다 더 얇고 곡선이 진 허리, 동그랗게 살집이 올라있는 엉덩이. 


 대성은 지용의 완벽한 이상향이었던 것이다.


 대성은 반응이 없는 지용을 흘긋 보다 말아버리고 지용이 아까 요청한 자세를 그대로 따랐다. 길게 누운 대성은 지용을 지긋이 바라볼 뿐이었다. 지용은 어떤 뜨거움이 머릿끝까지 올라와 있었다. 방금 먹은 술 때문이었을까? 아니었다. 지용은 반쯤은 알코올 중독이나 다름 없었다. 지용은 고개를 한 번 젓다가 종이에 연필을 댔다. 크로키다. 빠르면서도 모델의 특징을 잡아내야 한다. 근데, 크로키가 지금 지용에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지용의 고양이가 냥, 하고 다시 대성에게 뛰어올랐다. 고양이는 대성의 발끝부터 차근차근 따라 올라가 대성의 목덜미를 혀로 내밀어 핥기 시작했다. 


“간지러.”


대성의 목소리는 웃음기가 어렸지만 살짝 쉬어있었다. 그리고 눈웃음을 치며 지용을 보았다.  


“이 고양이 이름이 뭐예요?”


“…아이.”


 지용은 크로키에 집중한 척 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종이엔 괴팍한 선들만으로 가득했다. 


“일본어예요? 사랑?”


“몰라, 기억 안나.”


 지용은 꽤 무뚝뚝하게 대답했는데 대성은 괜찮아보였다. 아이는 마치 캣닙에 중독된 것처럼 정신없이 대성을 핥다가 대성의 팔뚝을 끌어안고 교미하려고 했다. 대성은 ‘어!’하고 처음엔 당황했지만 웃어버렸고 지용은 참을 수가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아이를 던져놓듯 안아 내려놓았다.


“미안.”


“아녜요, 아직 중성화를 안 하셨나봐요.”


“어.”


“다 하신 것 같은데 봐도 돼요?”


“안돼.”


“왜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대성의 목덜미가 지용의 눈에 밟힌다. 아이가 잔뜩 핥아 얼룩 덜룩 붉어져 있는 것이 마치 키스마크 같았다. 지용의 숨이 살짝 가빠졌다.


“나는 왜 너를 몰랐지.”


“저희 모르는 사이는 아니잖아요….”


 대성은 포즈를 풀고 아예 소파에 머리를 대고 누워 지용을 바라보았다. 아까 아이를 치우느라 잡고 있던 대성의 팔뚝이 지용의 손에 뜨겁게 느껴졌다. 지용은 대성의 팔뚝에서 손을 내려 대성의 손을 잡았다. 솜털만이 보송하게 나있는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대성은 그런 지용을 보고 놀란 듯 했지만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가져도 돼?”


“제 손이요?”


 대성은 잡힌 손을 살짝 빼려고 하면서 웃었다. 쉽게 내어줄 리 없다. 대성은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지용은 저절로 나오는 안타까운 한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때 아이가 또 올라왔다. 정면으로 누워있는 대성의 몸 위를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킁킁, 냄새를 맡기도 하고 아무데나 핥았다. 


“귀여워.”


“나도 아이 할래.”


“?”


“나도 아이 한다고.”


 대성은 꺄르르 웃었다. 그리곤 상체를 일으켜 ‘진짜’ 아이를 안아 내려놓았다. 그리곤 지용을 끌어 앉혔다.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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