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었다. 인적이 드물고 가끔은 풀벌레가 우는 곳이다. 찌르륵, 찌르륵 소리가 나다가 곧 저 멀리서 왈왈거리며 개 짖는 소리가 난다. 남자는 이 곳을 참 좋아했다. 서울보다 공기도 좋기도 했거니와 자주 오더라도 그때마다 특별한 기분에 젖게 만들고는 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거대한 철문 너머의 2층의 단조로운 주택을 바라보았다. 창이 그렇게나 많고 큰데도 불이 켜진 공간은 딱 1층의 거실로 추정되는 곳 뿐이다. 집주인의 성격 같아서 웃음이 나온다. 남자는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오늘 온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살짝 겁에 질린 목소리가 귀엽다. 남자는 저요. 하고 말했다.


"으응, 저가 누구신데요?"


 장난을 치려는거구나. 여전히 겁에 질린 것 같지만 대놓고 앙탈스러운 목소리에 남자는 이 집주인을 한 방 골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제가 집을 잘못 찾았나봅니다. 죄송합니다."


 남자는 정중하게 다시 응답한다. 바로 인터폰 뒤에서 무언가 반응하려고 할 때 남자는 얼른 툭하고 꺼버린다. 하지만 당연히 남자는 가지 않는다. 바로 문이 달칵-하고 열려지니 말이다. 남자는 후후 웃으며 문 안으로 들어간 뒤 철저히 문을 닫는다. 문 안은 이제 오직 남자와 집주인만을 위해 허용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푸르른 잔디가 깔린 돌길을 지나고 남자는 익숙하게 또다른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른다. 안에서 도도도 소리가 들리는 것이,


"오셨어요?"


 남자 품에 바로 안겨오는 집주인 때문이다. 남자의 뺨에 닿는 주인의 정수리가 살짝 젖어있다. 제 주인을 오랜만에 본 강아지처럼 잔뜩 몸을 부벼대는 이 말괄량이를 잠시 떼어놓았다.


 "대성씨, 씻었구나."


 "네에."


 "아직 밖이 좀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요. 감기 걸려. 목도 약한 사람이."


 남자가 대성의 실크 가운으로 감싸진 허릿춤을 껴안자 대성도 남자의 등에 팔을 감아온다. 불만 켜진 거실은 언제나봐도 단조롭다. 탁자 위에 흐뜨러진 레고 블럭이나 마시다 남은 홍차컵같은 것이 놓여있고 드문드문 놓인 푸르른 식물의 화분같은 것들이 단순함을 살린다. 집주인인 대성의 향기는 말 할 것도 없다. 남자는 자기를 물끄러미 올려다 보고 있는 대성을 내려다 보았다. 왜? 하고 남자가 다정하게 물어온다.


 "오늘 어디 다녀오셨어요?"


 "아, 오늘, 처형 생일이어서."


 "으응."


 대성은 눈을 깜빡깜빡하다가 자신의 허리에 감겨진 남자의 손을 떼어놓고 소파에 철푸덕 앉는다. 그 바람에 맨 허벅지가 가운 사이로 그대로 드러난다. 씻으세요. 그 동안 이거 남은거 마저 하려구. 대성은 남자의 시선에 다리를 확 오므리고 레고 조각 하나를 들어 조물락거린다. 살짝 삐졌다. 남자가 가족 얘기를 어쩌다가 꺼내게 되면 대성이 살짝 토라져하는게 남자의 눈에 보이곤 했다. 


 "나 씻고 바로 왔어요."


 "그럼요?"


 "근데 오늘은 그냥 자고 싶은데?"


 "엑, 그게 뭐야."


 소파에 앉아 있는 대성의 곁에 간 남자가 대성을 끌어 올려 품에 안는다. 그냥 이러고. 남자가 속삭이니 뭐야아... 하고 허무하다는 듯 말꼬리를 늘린다. 


 "보고 싶었어, 대성아."


 "...저도."


 대성의 맘이 살짝 풀린 듯 남자의 어깨를 안아온다. 분명히 대성은 근육질의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는데 남자의 키가 한참 커서 그런건지 한참 조그맣게 느껴진다. 머리 말려줄까, 하고 남자가 물으니 대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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