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밤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언제나처럼 얻어맞아 몸 구석구석이 뻐근했고 아랫입술은 살짝 터져 잘근 물 때 마다 핏물이 고여 입 안으로 스며들었다. 힘들어. 하지만 집으로 간다 해도 녀석들이 죽치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하다. 비가 그칠 때 까지만... 기다렸다가 들어가야지. 낡은 건물의 현관에 비를 피해 웅크리고 앉았다. 눈까지 덮는 검은 앞머리가 눅눅했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낡은 점퍼를 입었지만 한기가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몸을 콩벌레마냥 오므렸다.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이었고 빛을 비추어주는 것은 희미하게 제 역할을 하는 가로등 뿐이었다. 무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돈이 없어 우산을 못 사 비를 피할 수도 없고, 일당들이 무서워 나의 낡은 집에도 갈 수 없었다. 무능력한 내가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쏟아지는 각종 폭력을 감내하는 것이었다. 

 몇 시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거리에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혼자야. 난 혼자구나. 불쑥 불쑥 느껴지는 낯선 익숙함이 서러웠다. 비가 내리는 밤공기에 몸에 점점 차가운 기운이 들고 눈꺼풀은 텅텅 비어버린 위와 다친 상처들로 인해 무거워졌다. 잠깐만, 눈 좀 붙이자. 불쌍한 내 꼴에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도 쯧쯧거리며 가만히 지나가줄지도 모른다. 계단 난간에 몸을 기대고 머리를 팔에 파묻었다. 따뜻해졌다. 하지만 나도 언제까지 따뜻해질 수 있을까. 살짝 이도 떨리는게 아무래도 감기에 든 것 같았다. 그냥 이대로 아침에 죽게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질긴 목숨을 버리는 것을 수차례 시도했고 모두 실패했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가줘도 나는 미련이 없으니까. 가만히 눈을 감았다.


"...요."


"..."


"...기요."


"으응..."


"저기요."


"으...네...?"


 그러다 이 사람이 나타났다. 파뜩 고개를 들어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사람은 날 유심히 보는 것 같았다. 보는 것 같다고 한 이유는 그도 나처럼 앞머리가 눈을 가렸기 때문이었다. 그대신 검정색 머리인 나와 달리 밝은 갈색으로 염색을 해놓았다. 그리고 사실 ... 나랑 너무 닮았다. 속으로 놀란 마음을 간신히 추리는데 내 앞의 그는 투명한 우산을 쓴 채 나를 골똘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랑 같이 갈래요?"


 그는 여러 은 색의 반지들이 끼워져있는 작고 보드라운 손을 내밀었다. 어디를요? 라고 묻지 않을 정도로 나는 선뜻 나의 피투성이 손을 건냈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헐렁한 점퍼라도 꽁꽁 껴입은 나와 달리 그의 속이 비추는 셔츠는 범상치 않아보였다. 나의 손을 꼭 쥔 그가 씩-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나를 일으켰는데 내가 오랜 시간 동안 몸을 웅크렸던터라 살짝 비틀거리자 부축해주었다. 키도, 외모도, 같았다. 심지어 머리까지. 목소리도. 놀랍지 않으세요? 묻고 싶었지만 그는 내 손을 다정하게 쥐고 나를 우산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담담한 행동을 했고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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